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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오리건주 포틀랜드 흑인 커뮤니티에 5330억 기부

by 혁쿠쿠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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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흑인 커뮤니티 재건을 위해 
4억 달러(약 5330억원)의
거액을 기부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이트는 이날 부인 페니 나이트와
함께 포틀랜드의 
흑인 커뮤니티로 대표되는 
알비나의 재건 프로젝트에 
4억 달러를 기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알비나 재건 프로젝트는 
민간 투자와 자선 활동의 
결합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NPO) 
1803 펀드가 
새로 추진 중인 사업이다. 
나이트가 직접 기획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나이트는 
이 프로젝트가 포틀랜드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도시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필립 햄프슨 “필” 나이트
1938년 2월 24일 생이며 
미국의 기업인이자 
나이키의 공동 설립자로 
이사회 회장을 유지하다가 
2004년 최고 경영자로 
사임했고 2010년 
현재 재산은 102억 
달러로 세계 62위이다.

 

 

 

 

 

 

 

 

 

 

1938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전직 변호사 
출신 신문 발행인 빌 나이트와 
아내 로타 클로이의 아들로 태어나 
클리블랜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 대학교에 진학했다. 
1959년 오리건 대학교를
언론학 전공으로 졸업 후 
스탠포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1962년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세계 여행을 하다가 
1962년 11월 일본 고베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만든 
신발 브랜드를 본 뒤 영감을 얻어 
같은 고향 출신의 육상코치였던 
필과 함만 1969년 1월 25일 
신발 회사 나이키를 세웠다.

 

 

 

 

 

 

 

 

 

 

초기 친구 제프 존슨과 
학생이던 캐롤린 데이비슨의 
도움으로 나이키라는 회사명과 
로고를 만든 뒤 각종 
신발 브랜드를 창조해내며 크게 성장했다.
1996년 영화 감독이던 
마이클 무어가 인도네시아 등 
해외 나이키 공장들에 대한 
노동 문제를 폭로하자 
1998년 최소 노동 연령을 수정하고 
모니터링 상품, 제조 종사 
공장 등의 엄격한 규칙들을 세웠다.

 

 

 

 

 

 

 

 

 

 

2000년 오리건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06년 스탠포드 경영 
대학원에 1억 500만 달러를, 
2007년 8월 18일 아내 페니 나이트와 
함께 오리건 대학교에 이전까지 
2억 3천여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것 이외에도 오리건 대학 
육상 레거시 기금으로 
1억 달러를 더 기부한다고 
발표하였는데 이는 역사상 
최대의 대학 기금 기부이다. 
이외에 2008년 10월 OHSU 
암 연구소와 오리건 보건 과학 
대학에도 1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이사회 회장을 유지하다가 
2004년 11월 18일 사임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기반의 
회사 존슨 & 선 인터내셔널의 
CEO 윌리엄 페레스로 대체되었다.

 

 

 

 

 

 

 

 

 

 

스포츠의 상징을 만든 
은둔의 경영자 필 나이트
승리의 여신, 
와플, 휘갈겨 쓴 자국. 
도무지 접점을 찾기 힘든 
이 단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NIKE다.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한 것은 
196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Santa Monica)에 
첫 번째 매장을 연 후부터였다. 
이듬해 웰즐리(Wellesley) 지역에 
두 번째 매장을 연 후, 
블루 리본 스포츠와 그들의 대표브랜드 
나이키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시작한다.

 

 

 

 

 

 

 

 

 

 

1970년대 조깅 열풍이 불면서 
성장에 가속도를 붙인 나이키는 
미국의 스포츠 신발 및 의류, 용품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 매김한다. 
고속 성장 일로였던 나이키와 필 나이트에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80년대 중반. 
미국 시장을 강타한 에어로빅 열풍으로 인해, 
에어로빅 슈즈를 전면에 내세운 경쟁사 
리복(Reebok)에게 선두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이때 필 나이트는 스포츠 브랜드 
사상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가 선택은 한 NBA 슈퍼스타와 
후원 계약이었다. 
그리고 그 슈퍼스타는 
바로 시카고 불스 소속의 
마이클 조던이었다.

 

 

 

 

 

 

 

 

 

 

나이키는 1985년 
마이클 조던만을 위한 운동화 
에어 조던 원(Air Jordan 1)을 개발해 출시한다. 
에어 조던을 신은 마이클 조던은 
화려한 플레이 앞세워 농구 팬들을 
사로잡기 시작했고, 나이키 운동화의 판매율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나이키가 내세운 
저스트 두 잇이라는 광고 문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캠페인의 도전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에어 조던과 캐치프레이즈의 성공은 
나이키를 단순한 운동화 제조사가 
아닌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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